한국 무속문화와 샤머니즘 다루는 순수 창작극에 도전장 내밀어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은 신작 <만신 : 페이퍼 샤먼>을 6월 26일(수)부터 30일(일)까지 해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 한국의 무속문화와 샤머니즘을 소재로 한 순수 창작극에 도전함으로써 창극의 지평을 한층 넓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만신 : 페이퍼 샤먼>은 영험한 힘을 지닌 주인공 ‘실’을 통해 만신(萬神)의 특별한 삶과 그들의 소명의식을 이야기한다. 1막에서는 남들과는 다른 운명을 타고난 소녀가 내림굿을 받아 강신무가 되기까지를, 2막에서는 만신이 된 ‘실’이 오대륙 샤먼과 함께하는 여정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각 대륙의 비극과 고통을 다양한 형태의 굿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전방위 예술가 박칼린이 연출·극본을 맡았고, 극작가 전수양이 극본 집필에 함께 참여한 이번 작품은 지난해 4월 부임한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유은선이 기획하고 선보이는 첫 신작이기도 하다. 유 감독은 한국적인 소재를 현대적으로 풀어낼 연출로,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박칼린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토속신앙에 기반을 둔 환경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샤머니즘을 접했던 박 연출은 오래전부터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을 준비해 왔고, 원래의 아이디어를 이번 창극에 맞게 재구성했다. 그는 “무속을 치유의 영역으로 본다”라며 “굿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침략과 전쟁 등으로 상처받았고,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생명과 영혼을 달래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국내 1호 뮤지컬 음악감독으로도 잘 알려진 박칼린은 이 작품의 음악감독도 겸한다. 미국에서 첼로, 한국에서 국악 작곡을 전공하고 박동진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는 등 동서양 음악적 감수성을 모두 갖춘 박칼린만의 강점이 창극에서 어떻게 발휘될지 주목된다. 대명창 안숙선이 작창, 국립창극단 간판 배우 유태평양은 작창보를 맡았다. 판소리‧민요‧민속악을 근간으로 새롭게 작창한 소리를 중심에 두고, 무가(巫歌)와 여러 문화권의 토속음악을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무가는 이해경 만신에게 받은 원전 텍스트와 무속을 연구하는 이용식 전남대 교수에게 받은 연구 자료를 기반으로 무대화해 선보인다. 이외의 음악은 국내 영상음악의 대가로 꼽히는 방용석 감독이 이끄는 ‘격음치지’ 팀이 맡았고, 국립창극단 배우 30명이 구음으로 묘사하는 각양각색의 자연 소리는 음악을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굿에 담긴 한국적인 미학을 무대에 구현하기 위해 최고의 창작진이 합세한다. 무대는 언덕‧개울‧나무 등의 자연적 요소로 이뤄지며, 영상‧조명‧의상‧소품 등을 활용해 북유럽 숲부터 아마존 열대우림까지 다양하게 변화하는 공간을 표현할 예정이다. ‘페이퍼 샤먼’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종이를 활용한 무대도 주목할 만하다. 굿에서 사용되는 무구(巫具)의 일부를 종이로 만들어 한국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안무는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김윤규가 맡아, 역동적인 구도와 신들린 듯한 우리 몸짓으로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이번 작품에는 신예부터 중견까지 국립창극단 전 단원이 총출동한다. 강신무 ‘실’ 역에는 김우정과 박경민이 더블 캐스팅됐다. 치유사의 숲에서 막을 여는 북유럽 샤먼 ‘이렌’ 역의 김금미를 비롯해 각 대륙의 샤먼, DMZ 동물 등 시공간을 넘나드는 색다른 캐릭터로 분해 열연을 펼친다.
샤머니즘은 샤먼을 중심으로 한 토속신앙으로, 수천 년 전부터 전 세계에 존재해왔다. 영적인 존재와 인간세계를 매개하는 샤먼은 ‘예민한 자’ 또는 ‘치유사’로도 불리며, 보통 사람의 복을 빌고 죽은 자의 넋을 위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에서는 ‘굿’을 통해 풍년을 기원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도모했다. 우리 전통문화에 깃든 정신을 오늘날 감각으로 재창조한 신작을 통해 관객에게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예매‧문의 국립극장 홈페이지(ntok.go.kr) 또는 전화(2280-4114).변혜인기자